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종의 기원_정유정 작가] 책 리뷰

by Aggies '19 2024. 12. 6.
반응형

  인간관계론이라는 다소 무거운 책을 읽은 후, 밀리의 서재에서 가벼운 독서를 찾던 중 우연히 선택한 『종의 기원』. 평소 자기계발서나 과학, 심리학 서적 위주로 지적 능력 향상을 위한 독서를 하던 내가 과감히 소설의 세계로 발을 들였고,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과 함께 놀라운 흡입력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소설은 흥미로운 구성으로 시작된다. 등장인물들을 가볍게 소개한 후, 주 무대인 '집'으로 빠르게 장면을 전환하며 시간을 과감히 건너뛴다. 그리고 마침내 작가의 말에서 독자들에게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악은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태어나는가?"
  이 질문은 철학적 사유를 넘어 주인공 유진의 삶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로 다가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악설을 지지하는데, 일타강사 이지영 선생님의 예시가 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갓 태어난 아이가 배고픔이라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울음을 그치는 것처럼,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본성도 올바른 가정교육과 자기성찰을 통해 순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유진의 경우는 달랐다. 그의 내면에 잠재된 포식자적 본성은 이모가 처방한 약으로 억제되어 있었지만, 자의식이 강해지면서 투약을 중단하게 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소설은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며,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유진의 독백과 회상 속에 등장하는 연년생 형과 아버지, 의붓형 해진, 어머니, 그리고 이모가 주요 인물이다. 경찰이나 호떡집 아저씨 같은 조연도 있지만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이 제한된 설정 안에서도 놀라운 긴장감과 몰입도를 만들어낸다. 특히 섬세한 묘사력은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생생하다.
  이 작품은 미국 드라마 '덱스터'를 연상시켰다. 트라우마로 사이코패스가 된 덱스터가 양아버지의 지도로 '정의로운 살인마'가 되는 것과 달리, 유진은 약물로 본성을 억제하다가 스스로 그 통제를 벗어던지며 파멸의 길을 걷는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유진 주변 인물들의 연쇄적인 비극과, 그 비극의 원인 제공자가 끝내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절벽 아래 바다에서 일어난 연년생 친형의 죽음과, 아들을 구하려다 함께 운명을 달리한 아버지의 사고는 'What If'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만약 어머니나 이모가 유진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어주었다면, "너는 위험한 아이"라는 낙인이 없었다면, 과연 유진은 최상위 포식자로서 가족을 모두 살해하는 극단적인 결말을 맞이했을까?
  정신과 전문의인 이모는 데이터에 근거해 약을 처방했겠지만, 어머니가 일기에 적어둔 감정을 아들과 조금이라도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도미노처럼 쓰러져간 비극적 결말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우리 각자가 가진 내면의 어두움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때로는 불편하고 충격적이지만, 그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인간 본성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이 여정은 쉽지 않지만, 그만큼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반응형

'<책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전한 행복] 책 리뷰  (0) 2024.12.27
[인간관계론] 책 리뷰  (2) 2024.11.13
[연금술사] 책 리뷰  (6) 2024.09.10
[풍수전쟁] 책 리뷰  (0) 2024.08.12
[신비소설 무] 책 리뷰  (0) 202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