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신유나 a.k.a 사이코패스가 정의하는 행복의 의미'
"종의 기원" 그리고 정유정 작가의 다른 책이 궁금해 선택한 "완전한 행복". 사람들이 칭찬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번에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책.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종의 기원과는 달리 배경이 자주 바뀌고 등장 인물도 더 많아진 이 책은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하는 충격적이고 날카로운 심리 스릴러다. 이 소설은 '행복'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사이코패스 주인공 신유나를 통해 완전히 뒤틀어 보여줌으로써, 읽는 내내 강렬한 불편함과 동시에 깊은 통찰을 안겨준다.
작품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단연 오리먹이 제작 과정이다. 엄밀히 말하면 책 1페이지부터 속이 미식거리는 표현들이 넘친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지만, 실제로는 살인 후 시신 처리 과정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솔직히 책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나오는 이런 묘사를 읽었을 때는 '오리 먹이를 만드는 장면을 꽤나 섬뜩하게 표현하네' 정도로 담담하게 읽고 넘어갔다. 하지만 책 후반을 통해 이 묘사 장면이 가진 섬뜩한 이중성을 깨닫는 순간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으며, 특히 이를 어린 지유의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더욱 불편함을 자아냈다. 이는 극도의 공포 상황에서 살아남은 덱스터를 연상케 하는 오마주이기도 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작가의 독특한 서술 기법이다. 작가가 작가의 말이라는 책 말미에서 밝혔듯, 이 소설은 주인공의 시점이 아닌 주변 인물들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작가 역시 처음 시도하는 도전이라 굉장히 어려웠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로써 사이코패스인 신유나의 왜곡된 행복관을 더욱 선명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주변인들의 시선을 통해 그려지는 신유나의 모습은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다채롭게 분산되어 보이지만, 결국 그 분산된 빛을 조립하면 사이코패스 신유나의 살떨리는 인격으로 귀결되니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는 두 아이의 부모로서 소설을 읽다 보니 사이코패스 신유나의 기괴한 행동에 혀를 내두르기 보다 어린 지유의 미래가 특히 우려되었다. 어린 나이에 잔혹한 살인을 목격하고, 사이코패스 어머니에게 지속적인 정서적 학대와 가스라이팅을 당한 아이가 과연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이모와 함께 한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정도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지만, 신유나가 심어놓은 트라우마라는 악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악의 씨앗은 언제 발아하느냐의 시점의 문제이지 발아를 할까 안할까의 가능성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신유나라는 현재의 악은 죽었으나 그녀가 남긴 악의 씨앗은 여전히 대물림 된 것이라 지유 버전의 완전한 행복 II 라는 책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작품 속 "행복이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는 구절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앤다"는 표현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소하고 건강한 행복의 개념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나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의 작은 기쁨에서 행복을 느끼고, 바쁜 일상 속 잠깐의 여유로움을 가질 때, 혹은 치킨이 먹고 싶을 때 사먹을 수 있는 여유로움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불행의 가능성을 제거해 얻는 신유나의 행복의 정의는 불행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없애는 행위이니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들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가장 어두운 면을 파고들어 우리 삶의 부정적인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온 질문은 '완전한 행복'이 진정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를 살다 보니 돈의 양이 행복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진부하지만 내 몸 또는 가족 누군가가 아프지 않은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알고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사회가 더 바쁘게 흘러갈 수록 '행복'이라는 가치가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변화이고 사회적으로 볼 때는 변질이라고 표현해야 맞으려나? 예전에는 조금 양보해서 살면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다는 공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양보하면 바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변질이 맞는 단어일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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